레이스는 모터사이클로 서킷을 타본 사람이라면 막연하게 꿈꾸는 미지의 영역이다. 자동차도 마찬가지지만, 모터사이클 레이서가 되기 위한 길은 만만치 않다. 기본적으로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결정적으로 비용도 많이 든다. 모터사이클을 레이스 규격에 맞게 세팅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것도 많다. 때문에 모터사이클 레이스는 소수에게 허락된 '그들만의 리그'로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모든 모터사이클 레이스가 어렵고 비싼 것은 아니다. 저렴한 비용으로 손쉽게 모터사이클 레이서가 되는 방법이 있다. 바로 혼다코리아가 공식 개최하는 KMRC(Korea Mini-Moto Race Championship) 혼다 원메이커 레이스다. 혼다 원메이커 레이스는 크게 두 가지 클래스도 나뉜다. 슈퍼커브, C125, CT125로 참가가 가능한 혼다 커브컵이 그 중 첫 번째다. 또 다른 클래스는 좀 더 스포티한 미니 모터사이클인 MSX 그롬125 또는 몽키125로 참가할 수 있는 혼다 MSX컵이다.
KMRC 혼다 원메이커 레이스는 올 시즌 총 3개 라운드와 내구레이스로 진행된다. 장소는 영암국제서킷 옆에 위치한 영암국제카트경기장이다. 이곳에서 1·2라운드가 각각 5월과 6월에 열렸다. 3라운드는 한 여름의 더위가 절정에 달했던 8월 25일 진행됐다. 올 시즌 마지막 대회인 내구레이스는 오는 10월 13일 열릴 예정이다.
이 중 MSX 그롬125를 타고 MSX컵 3라운드에 객원 레이서로 참가했다. 개인적으로 10년 가까운 모터사이클 경력 동안 영암과 인제, 태백 등 서킷 경험이 많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확실히 레이스는 차원이 다르다. 아무리 미니 모터사이클로, 1.222km에 불과한 카트장을 달리는 방식이지만 레이스는 레이스다.
객원 레이서로 참가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제대로 달리기 위해 경기 전날 연습 주행을 진행했다. 참고로 영암카트장에서 레이서로 참가하기 위해서는 이론 교육과 10만원의 비용을 통해 라이선스를 취득해야 한다. 일반 서킷이 매년 라이선스를 갱신해야 하는 것과 달리 영암카트장의 라이선스 기한은 평생이다.
영암카트장은 짧은 길이에 여러 코너를 복합적으로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때문에 생각 이상으로 난이도가 높다. 방심할 틈도 없이 분주히 온몸으로 그롬125를 조작해야 한다. 한낮 기온 35도 이상의 폭염을 뚫고 연속된 코너를 정신없이 달리다 보면 어느새 몸은 녹초가 된다. 하지만 그롬125의 가벼운 차체와 민첩한 움직임, 적당한 성능 덕분에 생각보다 빠르게 적응을 할 수 있다.
8월 25일, 레이스의 아침이 밝았다. 하루 동안 혼다 원메이커 레이스 외에도 다양한 경기가 연달아 열리기 때문에 일정이 촘촘하다. 17명의 참가자 중 예선 결과는 16위. 난생 처음 참가한 레이스였기 때문에 오전 예선 결과는 좋지 못했다. 하지만 그롬125이라는 자그마한 모터사이클로 레이스에 참가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고, 레이스는 즐기면 그뿐이었다.
결승 레이스는 오후 늦게 진행됐다. 한낮의 더위가 한풀 꺾인 뒤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미니 레이스지만, 혼다 원메이커 레이스는 모든 것이 제대로다. 그리드 정렬을 한 뒤 웜업 주행을 진행한다. 이어 그리드에는 레이서와 그롬125만 남은 채 모든 사람이 퇴장한다. 그리고 출발 신호등의 불이 들어온 뒤 순식간에 꺼진다. 출발을 알리는 신호다.
예선 결과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맨 뒷줄에서 출발을 했다. 하지만 이는 곧 앞선 레이서의 움직임이 한눈에 보인다는 뜻이기도 하다. 앞 줄의 몇 명이 제대로 출발하지 못하고 주춤하는 사이 빠르게 그 틈을 파고 들었다. 그리고 순위를 높인 채 첫 번째 코너를 통과했다. MSX컵에는 예상 외의 실력자들이 굉장히 많다. 누군가에게는 이 레이스가 자존심을 걸고 실력을 겨루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실력자들은 빠르게 선두를 형성한 뒤 중하위권과 격차를 벌려 나갔다. 그들과의 격차를 좁히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순위를 유지하는 데 집중하며 레이스를 운영했다. 영암카트장의 노면은 생각 외로 거칠기 때문에 조금만 욕심을 부리면 슬립과 사고가 쉽게 발생한다. 실제로 레이스가 진행되면서 많은 레이서들이 넘어지기 시작했다. 일부는 빠르게 수습해 레이스를 이어나갔지만, 몇몇은 수습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덕분에 어부지리로 순위를 좀 더 높일 수 있었다. 안정적으로 레이스를 운영하자는 나름의 전략이 적중했다.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어느새 12랩을 다 돌았다. 하나둘 체커키를 받으며 경기를 마쳤고, 나도 순식간에 레이스를 끝냈다. 최종 결과는 17명 중 13위. 목표로 했던 베스트랩타임 1분20초대를 기록했다. 결과도 결과였지만, 난생 처음 레이스를 완주했다는 사실에 알 수 없는 뿌듯함이 몰려왔다.
레이스를 마치고 장비를 정리한 뒤 시상식이 이어졌다. 포디엄에 올라 상을 받고 서로 축하를 해주는 레이서들을 보니 모터사이클 레이스라는 게 아주 멀리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모터사이클 레이스를 이렇게 쉽고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생각 외로 많은 사람이 그 먼 영암까지 가 레이스를 즐기는 데는 그만한 매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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