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오랜 기다림에 대한 완벽한 보상, 혼다 CBR600RR

오토캐스트 기자 2024-11-04 18:29:29

올 하반기 국내 모터사이클 시장의 최고 기대작, 혼다 CBR600RR이 마침내 출시됐다. CBR600RR은 지난 8월 온라인 사전 예약 당시 무려 1500대라는 예약 대수를 기록했다. 시장 규모가 크지 않은 국내 모터사이클 시장에서 스포츠 모터사이클이 1000대 넘게 계약된 건 보기 드문 일이다. 이 같은 인기의 이유 중 하나는 국내에서 더 이상 볼 수 없을 줄 알았던 CBR600RR을 다시 만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1790만원이라는 착한 가격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이처럼 인기의 중심에 선 CBR600RR을 전라남도 영암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KIC)에서 시승했다. 올 시즌 혼다코리아 최고 인기작이자, 트랙에서 진가를 맛볼 수 있는 스포츠 모터사이클이라는 점에서 시승 무대로 KIC가 낙점됐다.

트랙이라는 무대의 후광 효과를 차치하더라도 CBR600RR의 디자인은 굉장히 인상적이다. 혼다 모터사이클을 상징하는 레드, 블루, 화이트의 트라이 컬러 조합은 시작에 불과하다. 혼다 CBR 시리즈의 플래그십 모델 CBR1000RR-R을 떠올리게 하는 디자인도 굉장히 공격적이다.

무엇보다 모든 디자인 요소가 빠르게 달리기 위한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측면을 넓게 감싸는 페어링과 곳곳에 뚫려 있는 공기 구멍이 좋은 예다. 윈드실드와 그 주변의 페어링 또한 고속 주행 시 라이더를 향하는 바람의 양을 최소화한다. 심지어 CBR600RR은 언더 카울까지 충실히 챙겼다. 고속 주행 시 차체 하부로 흐르는 공기 흐름까지 고려한 설계다.

CBR600RR의 디자인 백미는 단연 센터업 머플러다. 테일라이트 하단에 위치해 디자인 완성도와 무게 중심까지 모두 잡았다. 이런 독창적인 설계 덕분에 센터업 머플러는 CBR600RR 시리즈의 디자인 아이덴티티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매년 엄격해지는 배기가스 규제로 인해 많은 이들이 최신 모델에서는 센터업 머플러를 볼 수 없을 것이라 예상했다. 이 같은 우려와 달리 다행스럽게도 혼다는 CBR600RR의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유지했고, 시장에서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CBR600RR은 굉장히 콤팩트하다. 엔진 배기량이 599cc에 불과하고 네 개의 실린더가 직렬로 배치됐다는 점을 고려해도 다리 사이에 감기는 차체 폭이 좁다. 이 같은 중앙 집중식 설계 덕분에 CBR600RR은 가볍다. 스탠드를 접고 차체를 일으켜 세우는 순간, 그 사실을 실감할 수 있다.

마침내 CBR600RR과의 첫 주행을 시작했다. 첫 랩은 워밍업으로 CBR600RR의 특성을 파악하는 데 집중했다. 길이 3.045km, 코너 11개로 구성된 KIC의 상설 코스를 제대로 달리기 위해서는 CBR600RR의 라이딩 포지션을 비롯해 스로틀 반응과 브레이크 답력, 변속 속도 등을 알아야 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파악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CBR600RR은 생각 외로 모든 것이 중립적이다. 121마력의 최고출력이 무려 1만4250rpm에서 나오고, 6.4kg.m의 최대토크가 1만1500rpm에서 터진다는 점을 제외하면 다루기가 쉽다. 스로틀 반응은 유순하고 브레이크는 일관성 있다. 퀵 시프트가 장착된 변속기의 움직임도 정확하고 부드럽다. 직경 41mm 프런트 포크와 멀티링크로 구성된 리어 쇽은 가감속 시 하중을 꽤 적절하게 소화한다.

처음 만났음에도 CBR600RR의 모든 부분은 믿음직스럽고 일관성 있게 움직인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엔진을 마음껏 쥐어짤 수 있는 상황이 연출된다. 워밍업을 마치고 KIC 상설 코스의 직선주로에 접어들자마자 스로틀을 힘껏 감았다. 엔진 회전수가 끊임없이 올라간다. 통상적인 모터사이클의 엔진 회전 한계수인 9000rpm은 일찌감치 넘어섰다.

그 순간, CBR600RR의 직렬 4기통 엔진은 폭발적인 배기음과 함께 큰 충격을 전달한다. 날카롭게 치솟던 엔진 회전수와 맞물려 최대토크가 만들어진 순간이다. 하지만 CBR600RR의 엔진 회전은 멈추지 않는다. 이윽고 1만4000rpm 가까이 다가서자 또 한 번의 배기음과 충격이 전해진다. 마치 F1 경주차와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121마력의 최고출력이 일순간 전달되는 과정의 일부다.

딱 한 번, CBR600RR에 탑재된 엔진의 한계치를 맛보자 자신감이 한껏 솟구친다. CBR600RR에는 다양한 조합으로 구성 가능한 라이딩 모드가 더해졌다. 출력 특성과 스로틀 반응 등을 관장하는 5단계의 파워 셀렉터, 9단계로 조절하거나 끌 수 있는 일종의 트랙션 컨트롤인 HSTC, 3단계 및 해제로 구성된 윌리 컨트롤, 3단계로 조절 가능한 셀렉터블 엔진 브레이크까지 이 모든 것을 4개의 주행 모드로 조합해 사용할 수 있다.

시승 시간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CBR600RR의 주행 모드 중 극단만 맛봤다. 즉, 가장 약한 모드와 센 모드를 선택했다. 차이는 분명했다. 모든 전자 장비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모드 3에서는 CBR600RR을 다루기가 굉장히 쉽다. 엔진 회전도 다소 느린 편이고 전체적인 움직임이 유순해져서 부담 없이 CBR600RR을 탈 수 있다.

반면, 전자 장비 개입이 최소화된 모드 1에서는 말 그대로 살벌하다. 윗급 모델인 CBR1000RR-R 못지않은 스릴과 흥분을 맛볼 수 있다. 당연히 엔진 회전은 훨씬 빠르고 스로틀을 놨을 때의 엔진 브레이크도 강력해져 적극적인 주행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영암에서 CBR600RR과 함께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인상은 강렬했다. 섀시의 모든 부분이 다루기 편한 것은 물론, 1만5000rpm 가까이 회전하는 엔진이 만들어내는 짜릿함 또한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시승을 마치자 딱 하나의 생각이 들었다. ‘사전 예약에 성공한 사람이 승자다.’ 겨울이 다가오지만 CBR600RR을 손에 넣는 사람은 얼마 남지 않은 시즌을 즐길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다음 시즌을 기다려야만 한다. 그러나 CBR600RR은 그 긴 기다림이 아쉽지 않을 만큼 놀라운 모습을 보여준다. 수십 년 이상 CBR600RR이 그래왔던 것처럼 말이다.

글/ 김준혁
사진/ 혼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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