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콘텐츠 주제는 바로 지금 러시아에서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는 한국발 벤츠입니다. 물론, 벤츠뿐 아니라 BMW, 랜드로버, 아우디 등도 있는데요.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냐?’고 의아하게 생각하실 수 있겠습니다. 자세한 내용을 살펴보기 위해 시계를 1년 하고도 두 달 전으로 돌려보겠습니다.
바로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합니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대러시아 경제 제재가 본격화됐는데요. 자동차 부문에서는 러시아 1위 업체인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를 비롯해 폭스바겐, 토요타, 포드, 메르세데스-벤츠 등이 시장 철수를 결정합니다. BMW와 GM, 혼다, 볼보 등도 수출 및 판매를 중단하는데요. 글로벌 업체들의 연이은 이탈로 러시아 자동차 시장은 크게 위축됩니다.
물론, 생산 시설은 러시아 내 남아있지만, 핵심 부품에 대한 공급망이 차단되며 정상적인 가동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러시아 내 자동차 생산량은 무려 31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죠. 그 결과, 2021년 166만6780대에 달했던 러시아 신차 판매량은 2022년 68만7370대로 전년 대비 58.8%나 급감합니다. 작년 한 해 신차 판매 규모도 약 1조5000억 루블(한화 25조원), 전년 대비 52%의 감소세를 보입니다.
현재 그 빈자리는 지리와 체리, 그레이트 월 등 중국차들이 채우고 있는데요. 최근 러시아와 중국 양국 간 분위기를 보면 중국차의 성장세는 앞으로 더욱더 높아질 전망입니다.
어쨌든 이렇게 신차가 없으니 자연스레 중고차로 눈을 돌리게 되죠. 지난해 러시아 중고차 시장 규모는 전년대비 14% 증가합니다. 2022년 러시아 내 중고차 대당 평균 판매가격도 2021년보다 32% 상승한 89만 루블(1500만원)로 집계됐습니다.
이 러시아 내 중고차 매물은 진작에 메말라 버렸고, 수입 물량이 가파르게 늘어나는데요. 러시아의 중고차 수입 루트는 크게 동쪽과 서쪽으로 나뉩니다. 서쪽은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 등 유라시아 경제 연합 국가이고, 동쪽은 바로 한국과 일본입니다. 중고차의 주요 수입 루트에서 중국은 빠졌어요. 러시아 현지 보도에 따르면, 중국 신차는 빠르게 늘고 있지만, 중국 중고차에 대한 신뢰도는 매우 낮아 인기가 없다고 해요.
사실 일본의 경우 대러시아 경제 제재에 동참하고 있지만, 제재 품목에서 중고차는 600만엔(5800만원) 이상 고급차로 한정했습니다. 즉, 600만엔 이하의 저렴한 차량이나 오래되고 낡은 차량은 러시아 수출을 풀어뒀죠. 여기에 엔저에 따른 환율 효과까지 더해져 일본의 대러시아 중고차 수출 물량은 지난해 크게 늘어났는데요.
일본중고차수출업협동조합 등에 따르면, 지난 한 해 일본에서 러시아로 수출된 중고차는 21만여대로, 전년대비 30%나 급증했다고 합니다. 다만, 일본차는 우핸들 차량이기 때문에 러시아에서도 동북 지역에 수요가 집중됐다고 하네요.
이어 한국에서도 지난해 1만9626대의 중고차가 러시아 수출길에 올랐는데요. 2021년 2358대보다 732.3%나 폭증한 수치입니다. 수출 금액은 2021년 4534만 달러(600억원)에서 5억7276만 달러(7600억원)로 13배 가까이 뛰었는데요. 국내 중고차 수출 전체 물량(2022년 40만4653대) 4.9%에 해당합니다.
국내 중고차 수출 대상국으로 리비아, 요르단, 튀르키예 등에 이어 전체 6위에 등극했습니다. 이와 함께 러시아의 우회 수출 거점이 지목되는 키르기스스탄 등도 급증했죠.
주목할 점은 판매 단가인데요. 러시아로 수출되는 중고차의 대당 평균가격은 2021년 1만9200달러(2500만원)에서 2만9200달러(3800만원)로 1만 달러나 올랐습니다. 지난해 수출 중고차의 대당 평균가격인 7300달러에 4배가 넘는데요. 다른 국가보다 가격이 높은 중고차, 즉 기본 가격이 높은 수입차나 연식 및 마일리지가 짧은 신차급 차량이 러시아로 많이 수출되었다는 평가입니다.
중고차 및 무역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일본과 달리 수출 차량의 금액 제한이 없고 좌핸들이란 점에서 가격대가 높을수록 일본보다 한국발 중고차를 찾는 이들이 많다고 하는데요. 러시아 동북 지역뿐 아니라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위치한 서부 지역 수요도 많다고 합니다. 수출 루트의 경우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이용한 화물 수송도 있지만, 카자흐스탄이나 키르기스스탄을 경유해서 가는 방식도 상당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존 중고차 수출업체를 통하지 않고, 바이어가 직접 요구한 연식과 마일리지가 짧은 특정 차량의 경우 신차급 가격에 매입을 하기도 한다고 하는데요. 컨테이너에 한두 대씩만 실어 간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허영 의원실을 통해 국토교통부의 또 다른 중고차 수출 자료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바로 중고 수입차의 수출 말소였습니다.
수출 목적으로 자진말소 등록 신청을 한 수입차는 2021년 1만4172대에서 2022년 2만6230대로 85.1%나 늘어납니다. 수입사별로 BMW코리아가 2021년 1445대에서 2022년 5816대로,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가 1313대에서 3689대로, 폭스바겐그룹코리아가 2176대에서 4269대로, 1년 사이 두세 배씩 많아졌습니다. 특히,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는 2021년 120대에서 2022년 898대로, 7.5배나 급증하죠.
물론, 이렇게 1년 사이 급증한 모든 물량이 러시아로 간 것은 아닐 것입니다. 다만, 대러시아 제재로 인해 2022년 러시아 자동차 시장에서 중고차 수요가 크게 늘며 일본과 한국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 지난해 한국의 전체 중고차 수출은 감소세를 보였지만, 러시아와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등으로 향한 물량은 폭등했다는 점. 러시아 중고차 수출 금액이 1년 사이 대당 평균 1만 달러나 올라, 평균의 4배가 넘는다는 점. 그리고 해당 기간 수입차의 수출용 말소 물량이 급격하게 늘어났다는 점. 이렇게 교차되는 공통점을 모으면, 한국에서 판매된 고가의 수입차가 중고차 형태로 러시아로 많이 나갔다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같은 취재를 이어가던 중 수입차 판매 일선에 있는 영업사원들로부터 “신차를 사서 공터에 한두 달 묵혔다가 중고차 수출용 말소 작업 후 러시아로 보내는 경우도 있다”도 말을 듣게 됐는데요. 이 또한 허영 의원실을 통해 최근 5년간 중고차 수출 물량 중 신차등록 이후 1~2개월 내 등록 말소 차량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신차 등록 후 2개월 내 수출 목적으로 말소된 차량은 2021년 254대에서 2022년 2440대로 9.8배나 폭증합니다. 이중 수입차는 1개월 이내 수출 목적 말소 등록 차량이 1192대로 국산차를 압도하는 수치를 보여줍니다. 이것 또한 해당 차량이 모두 러시아로 수출되었다고는 볼 수 없겠죠. 이 역시 1~2개월 내 말소 등록된 수입차 중 어느 국가로 몇 대나 수출되었는지 허영 의원실을 통해 관세청에 자료를 요청한 상황입니다.
어쨌든 한두 달도 안 된 수입차가 이렇게 수출되고 있다는 것을 보니 ‘러시아 시장 철수란 본사 정책을 어기고, 판매 실적 개선과 악성 재고 처리 등을 노린 일부 수입사나 딜러사가 조직적으로 가담한 것은 아닐까?’ 와 같은 의혹도 제기됐는데요.
이어지는 다음 편에서 러시아 중고차 수출과 관련해 주요 수입사와 딜러사에 대한 다양한 취재 내용을 정리해서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신승영 sy@autocast.kr
오토캐스트는 ‘러시아 중고차 수출’과 관련해 추가 제보를 받고 있습니다. press@autoca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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