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을 위해서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 BMW R18 트랜스컨티넨탈 시승기

기자 2021-10-29 13:22:02


[오토캐스트=김준혁 모빌리티 저널리스트] BMW 모토라드가 헤리티지 크루저, R18에 끊임없는 가지치기를 시도하고 있다. R18 클래식을 추가한 데 이어 최근에는 R18 배거와 R18 트랜스컨티넨탈을 더했다. 모두가 R18의 영역을 확장시켜 줄 주역들이다. 그중 R18 트랜스컨티넨탈은 여러모로 눈에 띈다. 커다란 덩치, 경쟁 모델을 의식한 듯한 디자인 때문이다. R18 트랜스컨티넨탈은 이름처럼 본격적인 대륙 횡단을 지향하는 투어링 크루저다. 그래서 R18의 기본 형태에 갖가지 장비를 더했다. 모두 장거리 투어에 필요한 것들이며, 기능적인 디자인 요소들이다.

대표적인 게 어디서 본 듯한 커다란 전면 페어링이다. 기존의 투어링 크루저들 역시 이런 형태를 따르고 있다. 따라서 R18 트랜스컨티넨탈의 페어링을 일종의 수렴 진화로 봐야 할 것 같다. 고래와 물고기 같은 전혀 다른 종이 비슷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비슷한 외형으로 진화한 것처럼 말이다. 디자인과 별개로 R18 트랜스컨티넨탈의 페어링은 상체로 들이치는 주행풍을 잘 막아준다. 온도가 0˚C에 가까운 추운 날씨에서도 마찬가지다. 고속에서도 상체에 찬바람이 들이치지 않을 정도로 성능이 탁월하다. 다만 라이더의 키에 따라서는 윈드실드를 거쳐오는 주행풍에 의해 헬멧이 요동친다. 그래서 달리다 보면 윈드실드 안쪽으로 상체를 감춰야 하는 요령이 생긴다.

또 하나 눈에 띄는 부분은 탑 케이스다. 안락한 동승자용 등받이가 더해졌으며 용량 또한 26.5리터로 넉넉하다. 각각 10.25리터의 용량을 갖춘 사이드 케이스 두 개와 결합하면 장거리 투어에 필요한 짐을 모두 챙길 수 있다. R18 트랜스컨티넨탈은 보이지 않는 곳에도 첨단 장비를 더했다. 동승자와 짐 적재 여부에 따라 댐퍼를 자동 조절하는 리어 서스펜션이 대표적이다. 이런 기능들 덕분에 혼자 투어를 나설 때는 온갖 짐을 다 가져갈 수 있고, 둘이 나설 때는 편안함을 높여준다. 그리고 시종일관 안락한 승차감을 유지할 수 있다.

반면, 새롭게 더해진 트랜스컨티넨탈만의 디자인 요소는 저속 주행 중 적지 않은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본래 이 정도 급의 투어링 모터사이클이라면 만만치 않은 무게를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대부분은 주행을 시작하면 무게감이 사라진다. 그런데 R18 트랜스컨티넨탈은 그런 부담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유는 차체 위쪽에 추가된 요소들 때문이다. 전면 페어링과 탑 케이스가 무게 중심을 높인 까닭에 부담감이 커진다. 시트고가 740mm로 낮지만 제자리에서 차체를 일으켜 세우기 쉽지 않다. 커다란 페어링이 앞 포크와 연결돼 있어 조향감도 묵직하다.

낮게 깔린 1802cc짜리 대형 박서 엔진이 높아진 무게 중심을 상쇄하고자 한다. 박서 엔진을 사용하는 다른 BMW 모토라드 모델처럼 말이다. 하지만 상쇄 효과가 완벽하지 않다. 가다서다를 반복하는 정체 구간에서는 평정심을 유지하기 쉽지 않다. 공회전 시 박서 엔진 특유의 좌우 요동침이 익숙하지 않을 경우, 부담은 더해진다.

다행스럽게 일단 속도가 붙기 시작하면 박서 엔진을 얹은 모터사이클 특유의 안정감이 짙게 나타난다. 적당히 묵직하면서도 부담스럽지 않게 안정감을 높여준다. 스로틀을 감을 때 묵직하게 터지는 토크 또한 일품이다. 제원상으로는 3,000rpm에서 158Nm의 최대토크가 발생한다. 허나 체감상으로는 스로틀만 감으면 어느 시점에서나 최대토크가 터지는 것 같다. 91마력의 최고출력이 4,750rpm에서 만들어지는 저회전대 지향 엔진이지만 회전 질감도 훌륭하다. 꾸준하게 엔진회전수를 높이는 재미가 쏠쏠하다. 건조중량이 427kg인 차체를 최대토크가 한바탕 몰아붙이고 나면, 이후부터는 기분 좋은 고동감이 이어진다. 머리 뒤에서 낮게 울려 퍼지는 건조한 배기음은 라이딩의 쾌감을 높여준다.

이처럼 초반의 부담감을 잘 극복하고 나면 유유자적 속도를 올리며 달리는 맛이 꽤 좋다. 페어링·사이드 케이스·탑 케이스에 적용된 마샬(Marshall) 사운드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명료한 음악, 5단계까지 조절되는 열선 그립과 시트가 만드는 온몸의 따스함, 기어 변속만 하면 차간거리와 속도까지 스스로 조절하는 액티브 크루즈 컨트롤, 낮게 울려퍼지는 박서 엔진의 배기음. 모든 게 완벽하게 이어진다.

그런데, 어느 순간 흥이 깨진다. 편하게 크루징을 이어가려고 하는데 자세가 나오질 않는다. 역설적이게도 R18 트랜스컨티넨탈의 가장 큰 매력인 박서 엔진이 말 그대로 다리 앞을 가로막는다. 다리를 앞으로 쭉 뻗는 포워드 스텝을 하고 싶지만, 불가능하다. 기존의 투어링 크루저에 길들여져 트랜스컨티넨탈이 제시하는 새로운 자세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다. 구조적으로 커다란 실린더 헤드로 인해 좌우 발판 쪽 공간이 여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자세가 어색하다. 옵션으로 준비되는 크롬 플레이트를 사용하면 상황이 좀 나을 것 같긴 하다. 하지만 박서 엔진 위에 받침대를 올려놓는 방식이기 때문에 이 또한 쾌적할 것 같진 않다.

첫술에 배부르기 쉽지 않다는 옛말이 있다. BMW 모토라드가 80여 년 만에 새롭게 내놓은 헤리티지 크루저는 여러 부분에서 차별화를 꾀하고 있지만 아쉬움 또한 많이 남는다. 자신들만의 헤리티지를 유지하면서 기존 투어링 크루저 방식에 익숙해져 있는 라이더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그러나 아직까지 모든 게 조화롭지 못하다. R18 트랜스컨티넨탈이 농익기 위해서는 아직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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