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벤츠 EQS 450+ 일렉트릭 아트, 다시 솟은 삼각별
2024-11-12
[오토캐스트=김준혁 모빌리티 저널리스트] 어드벤처(Adventure). 명사로는 모험을 뜻하고, 동사로는 위험을 무릅쓰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그래서 일부 모터사이클은 모델명에 어드벤처라는 단어를 포함시키곤 한다.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어디든 모험을 떠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일까. 대표적인 게 KTM 890 어드벤처 R이다.
890 어드벤처 R은 미들급 듀얼퍼포스 모터사이클에 속한다. 그리고 동급에서 가장 강력한 오프로드 성능을 품고 있다. 그에 따라 구성부터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전체적인 디자인은 다카르 랠리 무대를 휘젓는 랠리 머신 같은 모양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독특한 헤드램프, 높은 지상고와 시트, 타이어다.
KTM 특유의 헤드램프 디자인은 여전히 호불호가 나뉜다. 하지만 KTM을 상징하는 오렌지 컬러와 조화를 이뤄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프론트 포크와 리어 쇼크업소버는 오프로드 주행에 특화된 WP의 XPLOR를 사용한다. 포크와 쇼크업소버의 가동 범위 모두 240mm(일반적인 가동 범위는 120~150mm 내외)에 달할 정도로 길다. 이를 바탕으로 263mm의 넉넉한 지상고와 880mm라는 높은 시트를 완성한다. 타이어는 오프로드 주행을 염두에 둔 메첼러 카루 3를 사용한다. 이 같은 구성 덕분에 890 어드벤처 R은 한 눈에 봐도 오프로드를 잘 달릴 것처럼 생겼다. 그리고 실제로도 엄청난 오프로드 성능을 뽐낸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890 어드벤처 R로 돌 위를 달리거나 산을 넘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장거리 투어에도 적합한 모습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가동 범위가 길어 승차감이 좋을 것으로 예상되는 서스펜션, 힘이 넉넉한 엔진, 20L 용량의 넉넉한 연료 탱크, 주행풍을 막아줄 공기역학적인 디자인, 높은 시트에서 비롯되는 탁 트인 시야 같은 것들 말이다. 그래서 달려봤다. 흙길은 배제한 채 아스팔트로 채워진 500여km의 여행 길을.
890 어드벤처 R과 함께한 장거리 주행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서스펜션이다. 가동 범위가 길어 길 위의 크고 작은 요철이나 장애물은 아무렇지 않게 지나칠 수 있다. 서스펜션의 감쇠력 조절 범위 또한 넓은 것도 장점이다. 압축과 신장을 부드럽게 설정하면 승차감을 극대화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럴 경우 고속 주행이나 급격한 주행 상황에서 차체가 앞뒤로 흔들리기 쉽다. 그럴 때는 포크와 쇼크업소버를 스포츠 설정으로 바꾸면 모든 게 해결된다. 움직임이 한결 안정적이고 코너를 달릴 때는 키 큰 스포츠 모터사이클을 타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이런 상황에서도 서스펜션의 가동 범위가 충분하기 때문에 승차감이 크게 훼손되지 않는다.
발 밑에서 발생하는 모든 충격을 서스펜션이 기특하게 처리하니 라이더가 할 일은 오롯이 정면을 응시하고 스로틀 그립을 비트는 것뿐이다. 이 때는 회전대에 관계없이 고르게 힘을 만들어내는 병렬 2기통 889cc 엔진이 든든한 지원군이 된다. 최고출력 105마력에, 최대토크가 100Nm이기 때문에 건조중량 196kg인 차체를 이끄는 데 무리가 없다. 최대토크 발생 시점은 6500rpm이지만 3000~4000rpm 내외의 저회전에서도 힘이 충분하다. 뿐만 아니라 최고출력이 터지는 8000rpm에 가까운 고회전에서 지치는 기색이 없다는 점도 맘에 든다. 그래서 노면 상황에 구애 받지 않고 호쾌하게 내달릴 수 있다.
다만 객관적인 기준에서 890 어드벤처 R에 적용된 병렬 2기통 889cc 엔진은 폭발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이럴 때의 해결 방안이 하나 있다. 레인/스트리트/오프로드/랠리로 구성된 주행 모드 변경이다. 일반 도로에서는 스트리트 모드로 달리다가 랠리 모드로 바꾸면 차이가 확연하다.
원래 랠리 모드는 오프로드 주파 성능을 키우기 위한 설정이지만, 일반 도로에서도 유효하다. 스로틀 반응 속도를 네 가지 주행 모드 중 가장 빠른 랠리에 맞추고, 9단계로 나뉘는 트랙션 컨트롤의 개입량을 최소화하면 그제서야 비로소 엔진의 힘을 모두 활용한다는 느낌이 든다. 손 끝과 엔진 사이에 놓인 방해 요소가 사라지고 일직선으로 연결된 것 같다. 스로틀을 감는 즉시 호쾌한 가속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자꾸만 속도를 높이고 싶어진다.
이 같은 가속감을 이어갈 수 있는 또 다른 비결은 890 어드벤처 R만의 독특한 연료 탱크 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KTM의 랠리 머신인 450 랠리 팩토리 레플리카와 연료 탱크 구조가 동일하다. 통상적인 연료 탱크는 엔진 상단에 위치한다. 반면 890 어드벤처 R은 연료 탱크를 세 부분으로 나누고 메인 탱크 두 곳을 엔진 좌측에 위치시킨다. 20L에 이르는 연료 대부분이 엔진과 비슷한 높이에 위치하는 덕분에 무게 중심이 크게 낮아진다. 동시에 상단부 연료 탱크의 폭이 좁아져 차체가 훨씬 날씬하고 가볍게 느껴진다.
이 같은 구조는 경쾌하면서도 안정적인 움직임으로 이어진다. 마치 쿼터급 모터사이클에 오른 기분이다. 연료와 각종 오일을 더하면 무게가 200kg을 가볍게 넘어가지만 그런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주변을 내려다보는 높은 시야에 믿음직한 서스펜션과 든든한 엔진까지 더해지니 자신감이 솟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느낌 때문에 많은 라이더가 890 어드벤처 R을 엔듀로 모터사이클처럼 타는구나 하는 생각이 끊이질 않는다.
890 어드벤처 R와 500km 이상을 달리면서 예상 외로 포장도로에서 편하고 빠르다는 사실에 놀랐다. 다만 아쉬운 것은 시트다. 오프로드에서 노면의 피드백을 엉덩이로 정확히 읽어내고 서서 달릴 일이 많을 것을 염두에 뒀는지 생각 이상으로 딱딱하다. 그래서 100km 이상 달리기 시작하면 엉덩이가 아파온다. 890 어드벤처 R을 장거리 투어용으로 고려한다면 순정 옵션으로 준비된 시트를 사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또 다른 아쉬움은 주행거리다. 한계까지 쥐어짜지 않는 엔진 특성에, 20L의 넉넉한 연료 탱크 덕분에 1회 주유로 400km 정도는 충분히 달릴 걸로 예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훌륭한 방풍 성능과는 별개로 공기저항이 크고 오프로드 타이어를 끼운 탓인지 항속거리가 300km 남짓 했다.
사실 KTM의 890 어드벤처 라인업에는 오프로드 주행을 위한 R이 아닌 일반도로 주행을 위한 890 어드벤처이 존재한다. 상대적으로 가동 범위가 적은 서스펜션, 라이더와 동승자를 위해 분리된 시트, 방풍 성능이 보다 강화된 커다란 윈드실드, 일반 도로에 보다 집중한 타이어 등으로 R과 다른 길을 추구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R이 더욱 마음에 든다. 지상고와 시트가 높아 심리적인 여유가 더욱 크고, 프론트 포크를 조절할 수 없는 890 어드벤처과 달리 라이더의 취향에 맞게 적극적인 설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언제든 거친 오프로드를 달릴 수 있다는 비장의 카드를 남겨둔 기분도 든다. 무엇보다 가격 차이가 200만 원에 불과하다. 2000만 원 초반대에서 890 어드벤처 R만큼 힘 좋은 엔진과 고성능 서스펜션을 누리고 오프로드 잠재력을 경험할 모터사이클은 많지 않다. 바로 이 점이 890 어드벤처 R을 동급 최고라 부를 수 있는 이유다.
sk.kim@autoca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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