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자동차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충격적인 사실을 알았습니다. 응급상황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는 구급차가 국내에 도입된 것이 불과 1990년대라고 합니다. 그 이전에는 구급차가 그저 사람을 빨리 실어 나르는 수단이었습니다. 그동안 자동차의 발전만 이야기했던 것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살리는 자동차, 구급차에 대해 연재합니다. 우리나라의 구급차와 해외의 구급차를 비교해보고 미래의 구급차는 어떤 모습일지 그려보겠습니다.
구급차를 운영하는 사람 중 50%가 장의사(장례식 업무를 진행하는 사람)이던 때가 있다. 우리나라 이야기는 아니다. 1950-60년대 미국의 이야기다. 다소 섬뜩하면서도 열악한 시작이다. 그러나 발전은 남달랐다. 지금은 유럽과 함께 응급의료체계 선두 국가 중 하나로 꼽힌다.
1960년대 미국에서는 고속도로 사고로 1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사망했다. 이를 줄이기 위해 백악관을 중심으로 여러 단체들의 지원과 함께 응급체계에 대한 법안과 규정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이는 오늘날 미국의 응급의료체계의 초석이 됐다. 이후에도 안전하고 효율적인 구급차를 만드려는 노력이 활발히 이뤄지면서 오늘날의 응급 시스템을 구축했다.
초기 구급차 상황은 똑같이 열악했지만, 현재를 보면 우리나라와 사뭇 다른 모습이다.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미국의 구급차와 한국의 구급차를 비교했다.
[기획연재] #1 흔들리고 비좁은 우리나라 구급차 발전사
[기획연재] #2 우리나라 구급차, 불만이 끊이지 않는 이유
[기획연재] #3 “요즘 구급차, 나아진 게 하나 없다. 거꾸로 간다”
미국과 우리나라 구급차의 눈에 띄는 차이는 크기다. 미국과 우리나라 구급차는 차체부터가 다르다. 미국의 구급차는 크게 세 가지 형태로 나뉜다. 트럭 차체를 이용한 모듈형, 밴, 밴 차체를 이용한 모듈형 크게 세 가지 형태로 나뉜다. 주로 포드나 GM의 차량을 사용한다. 이 차체에 정해진 규격에 맞는 구급차를 제작해 각종 의료 장비와 부품 등을 싣는다.
반면 우리나라는 대부분 12인승 승합차 기반이다. 차종은 현대차 그랜드 스타렉스로 차체에 공간을 따로 만들어 붙이거나 개조하는 것 없이 실내 구조만 변경해 구급차로 만드는 게 전부다. 응급 처치 공간이 부족하다고 지적받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기본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좁다.
이는 규정의 차이에서 온다. 미국의 구급차는 1974년 연방정부가 정한 KKK표준에 근거한다. 이는 구급차의 높이, 길이, 폭 등 구체적인 규격을 제시하고 있다. 구급차에 실리는 장비는 탑승 인원과 수준에 맞춰 나누고 있다. 이 외에 차량 성능, 안락성, 운행 규정 등 그 기준이 포괄적이면서도 구체적이다. 반면 우리나라 구급차에 대한 규정은 빈약하다. 양으로 따져도 미국의 구급차 관련 규정이 백과사전이라고 한다면 한국은 A4 3-4장 수준이다.
미국의 구급차 길이는 구매자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나머지 규정을 맞추려면 기본적으로 차체 길이가 길어야 한다. 미국의 구급차 환자실 규정을 일부 살펴보면 △환자의 머리에서 EMSP(응급구조사) 좌석의 등받침까지 측정하였을 때 최소한 25인치(635mm)의 가리지 않는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 △침대 매트리스의 뒤쪽 가장자리에서 후면 로딩 문까지 최소 10인치(254mm)를 확보해야 한다. △구획은 첫 번째 환자 침대의 모서리와 바닥으로부터 측정된 근접 수직거리 사이가 도보에 지장이 없도록 최소 12인치(304.8mm) 여야만 한다. 등이다. 공간이 필요한 이유를 들어 환자를 처치하는 응급구조사의 공간을 확실하게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 환자실 기준의 일부를 살펴보면, 구체적인 수치로 제시하는 규격은 △환자실은 구획 칸막이로부터 뒷문 안쪽 면까지의 길이가 2500mm이상이어야 한다. △환자실 후면 도어 안쪽면에서 주 들것까지의 거리는 250mm이상을 유지해야 한다. △주 들것과 긴 의자 사이의 통로 폭은 300mm 이상으로 하여야 한다. △등받이는 긴 의자 길이로 하고 폭은 100mm 이상으로 한다 등이 전부라고 봐도 무방하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대부분 쓰이는 구급차는 현재 규정의 최소 기준에 맞춘 수준이다. 2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나라 구급차가 이보다 컸던 때도 있다. 기획연재 #1부터 이야기했던 90년대 초 처음 등장한 현대식 구급차다.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에는 기아 프레지오, 쌍용 이스타나, 현대 그레이스 등 15인승 승합차로 이뤄졌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낮은 안전성 등을 이유로 대부분 12인승 승합차로 바뀌었다.
미국과 비교해 우리나라는 구급차를 제작하는 회사도 한정돼 있다. 미국에서는 의료 및 의료 기구 회사 또는 중장비 회사가 구급차를 제작한다. 이 외에 구급차 전문 제작 업체도 20곳이 넘는다. 반면 국내에는 대표적으로 두 곳 뿐이다. 특장차 제조업체 오텍과 성우모터스. 최근 대부분의 국내 구급차는 오텍에서 제작한다.
우리나라 구급차 실태와 관련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강창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018년 국정감사에서 일선 구급대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언급하며 “구급대원들이 임무 수행 중 가장 힘든 작업이 뭐냐는 질문에 740명 중 44.8%(322명)이 치료 행위 중 몸 흔들림이라고 답했다”고 말하며 덜컹거리는 구급차를 지적한 바 있다.
또 첫 한국형 구급차를 개발해 보급한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 인요한 교수에 따르면 90년대 초반 구급차 실내의 환자 머리 위 공간에 따로 좌석을 마련해 응급 처치 공간을 마련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지만 현재 구급차에는 삭제되거나 변형된 상황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그는 소방청장, 복지부 장관 응급의학회장, 현대차 회장과 사장 등에 편지를 썼지만 보건복지부로부터 ‘법적인 하자가 없다’는 답변만 받았을 뿐이다.
이에 응급의료전문가들은 구급차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구급차 공간에 대한 개선이 필수이며 구급차 운영에 대한 보다 포괄적이고 구체적인 규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다정 기자 dajeong@autoca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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