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IS #2] 파리에서 마주친 ‘날 것 그대로’…지하철과 에펠탑

이다정 기자 2018-09-14 08:38:19
비일상적인 공간에서의 일상적인 생활은 어떤 일이라도 특별하다. 밥을 먹는 것도, 지하철을 타는 것도 무엇 하나 쉬운 일이 없다. 무엇을 하든 은근한 긴장감이 흐른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면 더욱 그렇다. 오늘의 계획은 지하철을 타고, 밥을 먹고, 일을 하는 것이다. 서울에 있었다면 특별하지 않을 일들이지만 괜스레 비장해진다.

파리 시간 12일 오전 8시. 따가운 햇살이 집안 전체를 가득 채운다. 덕분에 시차로 무거웠던 눈이 번쩍 뜨인다. 부엌 한 편의 커다란 창문을 열어 바깥을 보니 집 앞이 공동 묘지다. 네모지게 다듬어진 가로수 아래 널따란 묘비석이 촘촘히 누워있다. 눈 앞에 복잡한 도심이 펼쳐져 있는 것보다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다.

숙소에서 나가 보자. 오늘 들를 곳은 에펠탑이다. 뻔한 곳이지만, 뻔하기 때문에 빠트리면 어딘가 허전하고 아쉽다. 가는 길에는 파리의 지하철을 이용해 보기로 한다. 사실 파리의 도심은 좁고 주차가 힘들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훨씬 편리하고 경제적이다. 파리는 서울의 1/6 정도의 크기다. 체력만 받쳐 준다면 주요 관광지는 걸어 다녀도 문제 없다. 어쩌면 더욱 파리의 정취를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집에서 지하철역까지는 600여미터. 낯선 공간이라 길을 걷는 일조차 새롭다. 낮은 아파트, 도로의 자동차, 기다란 바게트를 뜯어 먹으며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까지 모든 것이 새롭다. 평화롭기까지 하다. 파리에 오기 전 “소매치기 조심해” 라는 얘기를 귀 따갑도록 들었다. 진짜로 소매치기 당하진 않을까 가방을 몸 앞으로 감싸 안고 있던 것이 조금 민망해진다.
파리의 자전거 공유 서비스 '벨리브'

잠시 긴장의 끈을 놓고 이곳 저곳을 훑었다. 골목의 좁은 도로 변에는 연식이 오래된 차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프랑스 국민차 브랜드 르노와 푸조가 대부분이다. 우리나라에서 현대・기아차만큼의 존재감이다. 어쩌면 그보다 더 클수도. 또 길 곳곳에는 자전거 대여 ‘벨리브(Velib)’가 있다. 우리나라의 따릉이(서울시)나 피프틴(고양시)과 같은 것이다. 다른 점이라면 전기 자전거가 있다. 일반 자전거는 연두색, 전기 자전거는 하늘색이다. 자전거마다 핸들 사이에 숫자버튼과 화면이 널찍하게 자리 잡고 있다. 화면에는 속도, 이동 거리, 대여 시간 등을 표시한다.


지하철 역 입구로 들어간다. 지하철 역 앞에는 노란색 M자 팻말이 커다랗게 붙어 있는 곳이 많다. 오래된 표지판인데 새로 바꾸지 않고 그대로 쓰고 있다. 계단을 내려가면 금연 표시와 함께 담뱃불을 끌 수 있는 대형 재떨이가 벽에 붙어 있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검색창에 ‘파리 지하철’이라고만 검색해도 친절하고 상세한 설명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파리 시내는 일드프랑스의 총 5개 존(zone, 구역)으로 나뉘는데 1회권 한 장으로 지하철이 가장 멀리 운행하는 3존까지 갈 수 있다. 전 구간 이용 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1일권을 구매할 경우 존마다 금액이 조금씩 다르다. 지하철 티켓은 1회권(1.90유로), 1회권 열 장을 묶어 파는 까르네(14.9유로) 등 종류가 다양하다. 머무는 기간이나 필요에 따라 선택해서 구입하면 된다. 우리나라의 티머니 같은 교통 카드도 있다. 나비고(Navigo)라고 하는데 그 카드를 만들려면 얼굴이 나온 사진이 필요하다. 카드를 만들고 사진을 뒤에 붙여야 유효하다.
지하철역 나가는 곳. 별도로 표를 넣거나 카드를 찍을 필요가 없다.

일단 1회권 열장(까르네)을 사서 일행들과 나눠 가졌다. 개찰구에서 티켓을 구멍에 넣으면 위로 쑥 나온다. 출구는 티켓이 없어도 나갈 수 있다. 하지만 검표원이 가끔 검사를 하기 때문에 나갈 때까진 끝까지 지니고 있는 게 좋다. 검표원을 만났을 때 티켓이 없으면 꼼짝없이 벌금 약 50유로를 내야 한다.
모든 역의 조명은 살짝 어둡고 벽면이 둥근 터널 형태다.

파리 지하철의 역사는 매우 오래됐다. 파리 엑스포가 열리던 1900년, 처음 개통했다. 오래된 만큼 낡았다. 어둑어둑한 조명에 에어컨, 화장실, 에스컬레이터 따위의 편의 시설은 전혀 없다. 게다가 내릴 때는 문을 내 손으로 직접 열어야 한다. 문 중앙에 달린 레버를 위로 당기면 ‘턱’하고 열린다. 비교적 최근에 만든 열차만 자동으로 문이 열린다. 덜컹거림도 꽤 심하다. 우리나라처럼 ‘손잡이를 잡지 않고 중심 잡고 서 있기’ 신공을 펼치는 것은 무리다. 벽에 몸을 기대거나 가운데 봉을 붙잡고 서야 한다.
갈아 타는 방향을 알아보기 쉽게 크게 표지판으로 붙여 놨다.

지하철에 타니 휴대폰 인터넷이 먹통이다. 그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지하철에는 핸드폰 대신 책을 쥐고 있는 사람이 꽤 많다. 가끔 몇몇 역을 지날 때 인터넷이 터진다 하더라도 4G가 3G로 바뀌어 속도가 급격히 느려진다. 지하철에 타자마자 휴대폰으로 이것 저것 하는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홈버튼을 누른다. 포기한다. 3G가 가능하다고 해서 사용하려고 애쓰느니 포기하는 편이 더 빠르고 마음도 편하다.

그렇다고 해서 크게 불편하진 않다. 파리는 도시 크기가 작기 때문에 역 간격이 짧다. 얼마 안 되어 다음 역에 도착하니 지하철 안에서 오래 머물 일이 별로 없다. 오히려 오래된 것이 주는 특유의 감성을 느낄 수 있다. 예쁘게 꾸미지도, 화려하지도 않았다. 순전히 이동의 기능만 해내는, 날 것 그대로를 보는 듯 하다.

한 번 갈아탄 후 10호선을 타고 La Motte Picquet Grenelle 역에 내려 에펠탑으로 향한다. 점점 에펠탑에 가까이 닿을수록 심경이 복잡해진다. 멀리서 혹은 사진 속에서 아름답게 보였던 에펠탑인데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들키지 말아야 할 것을 발견해 버린 느낌이다. 에펠탑 바로 아래에 서서 위를 올려다 보니 녹슬고 헤진 철근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에펠탑을 처음 마주하고 받았던 감동이 사라지진 않는다. 철근 덩어리도 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파리=이다정 기자 dajeong@autoca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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