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벤츠 EQS 450+ 일렉트릭 아트, 다시 솟은 삼각별
2024-11-12
몇 년 전부터 ‘제주 한 달 살기’가 유행이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자유롭고 여유로운 시간을 누리고 싶은 사람들의 힐링 방법 중 하나다. 많은 이들의 로망이지만 실현하기란 쉽지 않다. 회사를 그만 두지 않는 이상 일반 직장인에게 한 달 휴가는 꿈 같은 이야기다. 지난 주말 잠시나마 대리 만족을 하고 왔다. 과감히 제주도로 내려가 자그마한 밭도 가꾸며 ‘레알’ 현지인처럼 지내고 있는 선배를 만났다.
일요일 이른 아침 제주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제주도에 가면 늘 비슷한 관광지만 돌았다. 성산일출봉, 만장굴, 섭지코지 등 제주도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그런 곳. 이번 제주 여행은 다르다. 정해진 목적지 없이 즉흥으로 떠났다. 이번 여행의 테마는 도민이 추천한 소위 ‘육지인’들은 모르는 진짜배기 여행지 즐기기다.
여행을 떠나 색다른 기분을 느끼고 싶을 땐 새로운 차를 타보는 것도 방법이다. 흰색 모닝, 아반떼가 대부분인 렌트카 사이에서 나는 이번 여행의 발이 되어 줄 렌트카로 ‘푸조 3008’로 선택했다. 그 중에서도 은은하게 반짝이는 펄이 매력적인 붉은색 모델이다. 정확한 색상명은 얼티밋 레드(Ultimate Red). 렌트 비용은 보험료 포함 8만7500원이다. 성수기는 13만5000원 (7월 14일 이후). 차를 받으러 푸조 렌트카 차고지에 들어서니 C4 피카소, 푸조 3008, DS3 카브리오 등 푸조 시트로엥 전시장보다 더 다양한 차종이 늘어서 있다. 총 133대의 렌트카를 운영 중이라고 한다.
차에 짐을 싣고 선배를 만나 제주 공항과 가까운 용담 해안가로 향했다. 공항에서 차로 10분 정도 달리면 나오는 곳이다. 해안가를 따라 이어지는 용담 해안 도로는 공원, 카페, 횟집이 모여 있어 여행객들에게 인기 있는 드라이브코스다. 도로 중간마다 벤치와 바다 전망대가 있어 산책 코스로도 인기가 좋다. 목적지를 정할 겸 출출함을 달래기 위해 해안 도로 변에 있는 한 카페에 들어갔다. 카페 앞 쪽에는 옅은 에메랄드 빛을 띤 바다가, 반대 편에는 한라산이 통유리창 바깥으로 펼쳐져 있다.
첫 번째 목적지는 1100 도로. 제주시 오라동과 서귀포시 중문동을 연결하는 편도 1차 산악 도로다. 한라산 중턱 해발 1100m를 통과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35km 가량 와인딩 로드를 달리는 동안 초록 잎사귀로 무성한 나무가 도로 양쪽에 끝없이 펼쳐져 있다. 창문을 열고 시원한 숲 속 공기와 바람을 느끼며 드라이브를 즐기기에 최적이다. 차에 파노라마 썬루프가 있다면 열고 달리길 추천한다. 굳이 걸어서 오르지 않아도 한라산을 가까이 느낄 수 있다.
1100 도로를 지나는 동안 푸조 3008의 깔끔하고 쫀쫀한 핸들링 감각은 그 즐거움을 더했다. 처음 이 차를 탔을 때 다소 어색하게 느껴졌던 운전대 모양과 크기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손에 움켜 쥐고 달리기에 알맞았다. 경쾌한 몸놀림은 마치 ‘내가 운전을 엄청 잘하는구나’ 하는 느낌을 준다. 경쾌하지만 경박하지 않다. 때문에 재밌고 안정적으로 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지날 수 있었다. 특히 운전대 위로 솟아 있는 계기판으로 시선을 크게 옮길 필요가 없어 운전하기 편리했다.
제주의 산을 느꼈으니 다음은 바다로 향했다. 제주시 애월읍에 위치한 곽지 과물 해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효리네 민박’에서 이효리가 해질녘에 패들 보드 타던 그 해변이다. 곽지 과물 해변으로 향하기 전 우뚝 선 에펠탑이 인상적인 푸조・시트로엥 박물관에 잠시 들렀다. 이달 말 개관을 앞두고 공사가 한창이었다. 노트르담 성당, 개선문을 담은 커다란 사진을 입구부터 걸어 놓는 등 푸조의 고향 프랑스 분위기를 내기 위해 곳곳을 꾸몄다. 저녁 시간 조명이 들어오면 더욱 멋있다고. 다음 달 중순에는 푸조・시트로엥의 클래식카를 전시한 공간도 문을 연다.
서귀포시에서 제주시로 들어서니 비가 한 두 방울씩 떨어졌다. 하늘은 회색 구름으로 완전히 뒤덮였고 바다 역시 하늘과 비슷한 색으로 바뀌어 갔다. 제주의 바다는 수십가지의 색깔을 담고 있다. 시간과 날씨에 따라 푸른빛을 띠던 바다가 순식간에 잿빛이었다가 에메랄드빛이었다가 한다. 빗줄기가 점점 굵어졌다. 곽지 과물 해변을 둘러본 뒤 해안 도로를 달리며 하루 일정을 마칠 계획이었지만 숙소로 돌아갔다. 제주 동문 시장에서 5만 원 주고 산 푸짐한 모듬회로 아쉬움을 달랬다.
다음 날 아침. 여전히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따뜻한 국물이 생각나는 날씨였다. 아침 식사로 제주 향토 음식인 고사리 해장국을 먹기로 했다. 비에 젖어 더욱 선명하게 색을 내는 차에 올라타 고사리 해장국 맛집 ‘우진 해장국’을 찾아갔다. 점심 시간 전인데도 대기 번호는 148번. TV 맛집 프로그램에 소개된 후 그 인기가 더해졌다고 한다. 자리에 앉아 주문을 하면 가늘게 찢은 돼지고기와 제주도 고사리가 뒤엉킨 걸쭉한 국물이 뚝배기에 한 가득 담겨 나온다. 제주에 왔으면 고기국수나 해물 뚝배기를 먹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육지스러운’ 생각이 무색했다. 한그릇을 뚝딱 비웠다.
첫째 날은 인터넷 검색과 내비게이션으로 여행지를 찾아다녔다면 둘째 날은 제주도민인 선배의 추천에 따라 움직였다. 해장국으로 배를 든든히 채우고 이름 모를 한적한 바다 쪽을 향했다. 바다 앞 길은 개통도 안 된 도로라 한 쪽은 막혀 있었다. 길에는 차도 사람도 없었다. 잠시 차를 세워 놓고 바다를 바라봤다. 여전히 흐리고 바람도 세게 불었지만 이 역시 제주의 바다였다.
해안 도로를 따라 5분 정도 지났을까 선배가 적극 추천한 바다가 훤히 보이는 카페가 나타났다. 평소에 해안 도로를 따라 자전거를 타고 돌다가 이 카페에서 노트북을 펼쳐 일을 한다고.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질까봐 블로그에도 올리지 않는 그야말로 ‘나만 알고 싶은 장소’인 것. 카페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곳이었다. 바다를 바라보는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보다가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기를 반복했다. 날이 점점 맑아졌다. 바다도 푸른빛을 띠기 시작했다.
서울로 떠나기 3시간 전 신제주 시가지를 지나 한라 수목원을 향했다. 개인이 운영하는 제주의 여럿 관광지와 달리 입장료도 없고 조용해서 산책하러 자주 오는 곳이라며 추천해준 장소다. 제주시 연동 1100 도로변 광이오름 기슭에 위치한 이 곳은 제주도 자생수종과 아열대식물 등 약 909종의 식물이 있다.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 보호야생식물의 ‘서식지의 보전기관’이기도 하다. 수목원 전체를 둘러보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생긴 지 얼마 안 됐다는 대나무 숲으로 곧장 갔다. 울창한 대나무 숲 사이로 나오는 맑은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셨다.
렌트카를 반납하고 제주 공항으로 향하는 길, 맑은 하늘이 구름 사이로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여행 막바지에는 늘 날씨가 좋아 다음 여행을 기약하게 한다.
오토캐스트=이다정 기자 dajeong@autoca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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