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모터쇼의 시작. 모터쇼는 언제나 스르륵 개막한다. 적어도 기자로 참가하면 그렇다. 개막식은 언론공개일이 끝난 이후에 시작하니 언제나 모터쇼는 미리 보는 셈이다. 올해 도쿄모터쇼는 느낌이 다르다. 한일 관계가 경색됐고 일본 제품의 불매도 벌어지고 있다. 이 와중에 일본에 와서 일본의 자동차를 본다.
우리나라는 세계 5대 자동차 생산국이다. 미국, 독일, 일본, 중국을 제외하면 우리나라가 그 다음이다. 자동차의 소비는 규모보다 적극성을 인정받은 나라다. 신차, 신기술에 매우 민감하고 제품의 훌륭함과 허술함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좋은 브랜드는 높은 가격에도 미친 듯이 팔린다. 벤츠의 최고급 세단 S클래스가 그 예다.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권 톱클래스고 전 세계에서도 손가락에 꼽는다. 반면 품질이 떨어지면 여지없이 버티지 못한다. 미쓰비시, 스바루가 여러 가지 사정에도 한국 시장에서 철수한 배경도 비슷하다. 또,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같은 글로벌 초대형 브랜드가 버티고 있어서 이들 시장과 겹치면 여지없이 나가떨어진다. 우리나라 자동차 시장의 수준이 높은 이유다.
비슷한 나라로 일본이 있다. 오랜 시간 이어진 일본의 자동차 제조국 역사는 강한 힘이 있다. 특히, 몇 년 전까지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일본차는 신뢰의 상징이었다. 내구성과 품질이 뛰어났고 가격도 적당했다. 이제는 한국차가 이 시장을 노린다. 중국에서도 이미 한 차례 경쟁을 했고 지금은 동남아시아, 인도가 최전선이다.
지역을 벗어나 기술로 들어가면 최전선은 수소차다. 독일 브랜드, 미국 브랜드가 모두 전기차를 내놓는 요즘 수소차를 내놓은 브랜드는 현대자동차와 토요타 정도를 손에 꼽는다. 수소자동차 기술은 쉽게 볼 성질이 아니다. 지난 100년간 내연기관 자동차의 시대에 석유 패권을 생각하면 그렇다. 자동차를 움직이고 난방을 하기 위해 석유를 둘러싼 경쟁은 치열했다. 전쟁의 원인이기도 했다. 수소도 마찬가지다. 미래의 에너지원으로 꼽힌다. 지금은 단가가 비싸다지만 이를 국가단위로 소비하기 시작하면 얘기가 다르다. 생산부터 운송, 소비까지 모든 과정이 전기에 비해 합리적이다.
특히 보관이 불가능한 가장 큰 약점을 가진 전기 대신 수소는 보관과 운송이 가능하다. 그래서 호주의 사막에 수소 생산시설을 건설하고 수소 운반선을 만들어 대도시로 운송하는 방법이 현실적으로 등장했다. 이미 일본이 토요타 자동차는 물론 선박회사, 전기회사가 모여 추진하는 과제다. 그래서 앞으로 100년 수소 대중화 시대가 열린다면 수소 패권이 힘이고 권력이 될 것이다. 그래서 수소차는 중요하다.
이번 모터쇼의 주제를 그래서 수소로 잡았다. 전기를 넘어선 무엇인가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도쿄모터쇼는 반나절 만에 기대를 저버렸다.
도쿄모터쇼는 둘로 나눠졌다. 빅사이트 전시장에서 서관과 남관을 사용해 열린다. 여기에는 혼다, 닛산, 렉서스와 같은 브랜드가 있다. 전시장의 동관은 사용하지 않는다. 내년 올림픽을 위해 공사중이라고 한다. 대신 전철로 한 정거장 정도 떨어진 토요타의 메가웹이라는 전시장을 사용한다. 정확히는 메가웹 앞의 창고를 전시장으로 만들어 사용하고 메가웹에서는 미래를 향한 새로운 전시 ‘퓨처 엑스포’를 진행한다. 토요타의 수소차는 여기에만 전시한다. 무엇인가 혁신을 보여주지 못했다. 아쉽다.
둘로 나눠진 공간만큼 전시 내용도 아쉽다. 빅사이트의 브랜드 혼다, 닛산은 전기차를 메인으로 내세웠다. 혼다는 ‘e’ 시리즈를 무대에 올렸다. 2017년 도쿄모터쇼에서도 등장했었고 조금씩 더 다듬으며 유럽 모터쇼에서 보여줬던 차다. 소형차 크기의 시티커뮤터 컨셉의 전기차다. 깜찍한 외형으로 관심을 모았었는데 벌써 내년이면 양산형이 등장한다. 이번 모터쇼에서도 별반 다른 내용은 없었다. 양산형이 등장할 예정이고 혼다의 소형 스쿠터 두 대와 소형차 FIT가 메인 무대의 전부다.
닛산은 IMk라는 경 전기차를 선보였다. 경차에 전기차 파워트레인을 연결하는 것이 일본에서 어떤 혜택이 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작은 차를 선호하는 나라인 만큼 새로운 도전이다. 이미 우리나라에도 스파크 EV, 레이 EV와 같은 전기차가 있었는데 닛산은 새로운 컨셉트카로 경 전기차를 내놨다. 이 차는 앞, 뒤가 모두 일본의 기를 담았다. 일본의 집과 마당 그리고 사무라이의 투구와 같은 것을 연상케 하는 닛산의 디자인을 담았다. 일본 시장을 위한 일본 브랜드의 자동차다.
그 반대편에는 ‘Ariya’라는 전기차 컨셉트를 내놨다. 이미 미국 기자들을 대상으로 지난 8월에 공개했던 모델이다. 우리나라 부산 르노삼성자동차 공장에서 생산하던 닛산 로그와 비슷한 크기다. 다만, 실내는 전기차인 만큼 상위 모델 무라노와 비슷하다고 한다. 제로백 5초의 성능에 날렵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미국 시장에 실제로 출시할 예정이라니 우리나라에도 아마도 들여오지 않을까. 월드 베스트셀러 전기차 닛산의 리프가 생각난다.
그나마 제일 볼거리를 제공한 곳은 토요타 부스다.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려 뒤통수만 보였다. 방법을 찾았고 무대 뒤로 슬쩍 들어가 현장 방송스텝의 화면을 훔쳐봤다. 현장 상황에 집중하느라 아무도 뒤에 누가 있는지 신경 쓰지 않았다. 덕분에 도요타 아키오 회장의 연설부터 화려한 무대 퍼포먼스까지 편안하게 감상했다. 물론 일본어로 진행된 행사여서 몇몇 한자를 보고 내용을 추정할 뿐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넘겨 들은 내용을 정리하자면, 물론 나중에 보도자료와 영문 기사 등을 통해 확인했다. 토요타는 미래의 자동차와 사회를 설명했다. 미래에는 이런 자동차가 다닐 것이고 비단 차뿐만 아니라 이동수단, 운송수단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 것인지 보여줬다. 아키오 회장은 “e-팔레트 컨셉트카가 모두를 위한 운송수단이라면 e-레이서는 ‘애마’와 같은 존재”라고 구분 지었다. 공유해서 타는 차도 필요하지만 즐겁게 달릴 차를 구입하는 사람들은 계속 있을 것이란 해석이다.
이외에도 물건을 옮겨주는 마이크로 팔레트도 컨셉트로 등장했고 좌우 3개씩 총 6개의 바퀴가 직선과 삼각형을 그리며 앞, 뒤, 옆으로 움직이는 독특한 구조도 선보였다. 모터쇼를 통해 체험을 강조하던 아키오 회장의 뜻에 맞춘 것인지 곳곳에는 AR, VR을 통해 체험하는 공간도 마련했다. 미래의 레이서 옷을 입어보는 공간에서는 우리나라의 ‘스노우 앱’처럼 얼굴을 바로 합성해 미래의 레이싱 슈트를 입고 보여주는 스크린도 마련됐고 음료수를 가득 실은 마이크로 팔레트가 무대로 등장하기도 했다.
이런 공간을 제외하면 도쿄모터쇼는 아쉬움이 많다. 체험 공간이라는 야외의 ‘오픈 퓨쳐’는 푸드 트럭이 자리를 잡았고 우리나라의 길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전동스쿠터를 체험하는 공간도 마련했다. 일본은 아직 전동스쿠터가 불법이어서 거리에서 보기 힘들다. 또, 르노의 트위지를 전시했는데 르노 앰블럼 위에 플라스틱을 덧붙여 닛산의 앰블럼으로 교체했다. 아직 스티어링휠의 앰블럼은 바꾸지 못했는지 스티커로 ‘주의’라고 붙여두었고 손으로 만져서 르노 앰블럼을 찾아보려하니 옆에 선 누군가가 일본어로 안 된다고 말했다. (그렇게 느꼈다) 그래서 얼른 손을 뗐다.
짧게 돌아본 도쿄모터쇼는 여러모로 내년 올림픽의 사전 행사와 같은 분위기도 있었다. 올림픽에 일본의 주요 기업들이 모두 총력 참가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모터쇼도 마찬가지다. 토요타의 임원이 모터쇼 ‘퓨처 엑스포’의 조직위원을 겸하고 있다. 일본자동차공업협회 회장은 토요타의 아키오 회장이다. 자동차를 그리고 기술을 집중해 보려고 마음먹은 자리였는데 아쉽게도 올림픽 홍보 행사를 본 느낌이다. 하루라도 빨리 돌아가기 위해 밤 비행기를 선택한 탓에 이 시국에 찾아온 도쿄모터쇼 이야기 2부는 여기서 마친다. 나머지는 한국에 돌아가서 천천히 풀어야겠다.
3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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