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메모] 민식이법 갑론을박, 근본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다정 기자 2019-12-12 19:01:18
[오토캐스트=이다정 기자] 얼마 전 미국 LA로 출장을 갔다가 겪은 일이다. 출장 기간 타고 다닐 차 한 대를 빌려 시내로 들어섰다. 골목 사거리에 진입하려던 찰나 사방에서 오던 자동차가 정지선에 맞춰 일제히 멈췄다. 신호등도 없었다. 빨간색 표지판에 적힌 스톱(STOP) 사인만 있었을 뿐이다.

‘표지판 하나에 모든 차가 약속이나 한 듯 멈춰 선다고?’ 한국에서 운전을 배우고 줄곧 한국 도로만 달렸던 나에게 이런 광경은 꽤나 충격이었다. 정지 표지판 앞에서 일단 멈춰야 한다는 것은 운전면허를 취득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이를 지키는 운전자는 거의 없다.

이곳에서 정지 표지판의 힘은 매우 컸다. 스톱(STOP) 표시가 보이면 사람이 있든 없든 무조건 차를 정지해야 한다. 완전히 멈춰서서 3초 간 전방과 좌우를 살핀 후 출발해야한다. 스르르 굴러가는 것도 불가하다. 이를 어기면 벌금을 문다. 주마다 다르지만 출장 기간 머물렀던 캘리포니아는 $284(한화 약 33만원)다.

2주의 출장 기간, 정지 표지판을 어기는 차는 단 한 대도 없었다. 인적이 드문 도로에서도 정지 표지판이 보이면 일단 멈췄다. 차 한 대, 사람 한 명 없으면 스르르 속도를 줄이다가 출발할 법도 한데 무조건 브레이크를 꽉 밟고 정지선에 맞춰 섰다.

특히 스쿨버스의 스톱(STOP) 표지판 앞에선 더 엄격했다. 스쿨버스가 멈추면 아이들이 내리는 반대 방향에 스톱(STOP) 표지판이 펼쳐진다. 이 때 도로 뿐만 아니라 반대편 도로의 차량 역시 모두 정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반 정지 표지판을 어겼을 때보다 몇 배의 벌금을 문다. 스쿨버스의 번쩍이는 전등을 무시하고 통과하면 $675의 벌금이 부과된다.(캘리포니아 기준)

이처럼 미국의 스쿨존 벌금은 더욱 강력하다. 여기에 보행자가 길을 건너려고 횡단보도 앞에 서 있기만 해도 차를 멈추는 보행자 중심의 운전 습관 덕분에 어린이는 조금 더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스쿨존의 벌점 및 범칙금이 일반도로보다 높지만, 그리 높은 수준도 아니다. 스쿨존에서 속도를 위반하면 초과 속도에 따라 6만원에서 12만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지난 10일 스쿨존 내 교통사고 가해자를 가중처벌하는 내용을 담은 일명 ‘민식이법’이 국회 본회의를 가까스로 통과했다. 스쿨존에서 어린이를 보호한다는 입법 취지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하지만 이 법안의 통과만이 스쿨존에서 어린이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민식이법과 관련해선 처벌 수위나 고의와 과실 여부 등에 대해 갑론을박도 벌어지고 있다. 계속해서 다듬어가야 할 문제다. 이에 앞서 불법 주차 단속, 정지선 준수 등 엄격한 도로 법규와 보행자 안전을 우선시하는 운전 습관이 보편화돼 있었다면 보행자 교통사고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민식이법이 등장한 근본적인 이유를 떠올려봐야할 때다.

dajeong@autocast.kr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