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수소 사업' 정의선의 뚝심일까, 고집일까?

신승영 기자 2024-07-12 20:22:40

현대차가 올 들어 수소 생태계 조성에 다시 한 번 드라이브를 걸고 나섰다. 그간 주춤했던 수소 사업에 새로운 분수령이 될까.

지금 수소차에 대한 기대는 10년 전과 크게 다르다. 2015년 당시 글로벌 리서치 기관들은 '오는 2030년 수소차 시장이 연 105만대 이상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 전망했다. 

하지만 현실은 암울하다. 글로벌 수소차 시장은 2022년 2만대를 정점으로 매년 가파르게 감소하는 추세다. 지난해는 1만4400여대에 그쳤고, 올 상반기도 전년대비 반토막 수준이다. 충전 인프라 부족과 연료비 상승, 낮은 내구성 및 불량 수소 등에 따른 잦은 고장, 그리고 매력적인 신차 부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그 인기가 바닥을 치고 있다.

글로벌 리서치 기관들도 입장을 바꿨다. 최근 리포트를 살펴보면, 수소차는 2030년까지 가격과 제품력에서 전기차와 같은 모멘텀을 마련할 경우 2035년 100만대 달성을 기대할 수 있지만, 기술·가격·인프라 등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진보를 달성하지 못하면 오히려 도태될 수 있다.

#일보후퇴 이보전진

현대차는 1998년 수소 연구개발 전담 조직을 신설한 후 수소 모빌리티 영역에서 퍼스트 무버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현대차도 최근 몇 년간 거센 시장의 흐름을 거스르지는 못했다.

2022년 국내 시장에서 연 1만대 판매를 달성했던 넥쏘는 지난해 4300여대에 이어 올 상반기 1400여대에 그쳤다. 2018년 출시된 넥쏘의 후속 모델은 고사하고, 제네시스와 스타리아 수소차 개발도 중단했다. 엑시언트 수소전기트럭은 미국과 유럽에서 다양한 실증 사업에 투입되고 있지만, 안정적인 수익 실현은 요원하다. 현대차에 수소연료전지를 공급하던 현대모비스도 2021년 인천 청라에 1조원을 들여 생산기지를 건설하려고 했지만, 아직 삽도 뜨지 못했다. 회사 전반에 걸쳐 수소차가 아닌 전기차에 보다 많이 집중하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최근 행보는 다르다.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부터 수소에 대한 강한 의지를 다시 드러냈다. '수소와 소프트웨어로의 대전환'을 주제로 참가한 행사에서 기존 수소연료전지 브랜드인 'HTWO'를 현대차그룹 수소 밸류체인 사업 브랜드로 확장했다. 더불어 수소 생산부터 저장, 운송, 활용 등 모든 과정에 고객 맞춤 패키지를 제공하는 'HTWO Grid 솔루션'을 발표하고, 현대차와 현대건설, 현대엔지니어링, 현대로템, 현대글로비스, 현대제철 등이 함께 수소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기로 선언했다. 또한, 2025년 넥쏘 후속 모델 출시와 메가와트(MW)급 고분자전해질(PEM) 방식의 수전해(*물을 전기분해해 고순도 수소를 생산하는 기술) 설비 양산 계획 등도 밝혔다.

2월에는 현대모비스의 수소연료전지 사업 인수를 공표한다. 그간 수소 사업은 현대차가 연구개발(R&D)을 맡고 현대모비스에서 핵심 시스템을 생산하는 방식이었지만, 그룹 내 기술과 자원을 한 곳에 모아 통합 시너지를 창출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통해 기술 혁신과 제품 개발 속도를 높이고, 수소연료전지의 성능 및 품질, 가격 경쟁력을 동시에 끌어올릴 방침이다. 또한, 현대차는 R&D 본부 수소연료전지개발센터 내 '수소연료전지 공정품질실' 등 제조 기술과 양산 품질을 담당하는 그룹을 새롭게 추가하며 조직 구조를 강화했다. 수소 부문에서 사업 및 상품 기획과 전략 수립, 시스템 개발 등 각 부문 인력 채용에도 나섰다.

5월 미국 라스베이거스 ACT 엑스포에서는 엑시언트 수소전기트럭 콘셉트 모델을 공개하며, 수소 상용 모빌리티 사업 확장을 알렸다. 단순한 차량 판매를 넘어 수소 충전소를 구축하고, 금융 상품과 유지 보수 서비스까지 종합적으로 제공한다. 실제로 현대글로비스 북미법인과 협력해 엑시언트 수소전기트럭으로 완성차 및 부품 운송 사업을 진행하는 'HTWO 로지스틱스 솔루션'도 발표했다. 

4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오토차이나(베이징 모터쇼)와 6월 부산모빌리티쇼 등에서는 수소기술존을 별도로 마련해 대중에게 미래 수소 사회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했다.

#또 중국이야!

현대차가 수소에 다시 드라이브를 건 가장 큰 배경으로 중국이 꼽힌다.

우선 상용차를 중심으로 위통(Yutong)과 킹롱(Kinglong) 등 중국 업체들의 추격이 거세다. 중국 수소차는 업체 각각의 기술과 규모는 영세하지만, 강력한 정부 지원 아래 내수 시장에서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중국은 한국을 제치고 수소차 단일 최대 시장에 올라섰다. 더불어 위통, 킹롱, 상하이(SAIC), 둥펑, 이치 등 중국산 수소차의 총 판매량도 처음으로 현대차를 앞질렀다.

중국 정부는 오는 2025년 수소차 5만대를 시작으로 2035년까지 누적 100만대 보급을 계획하고 있다(수소 에너지 산업 중장기 발전 계획 2035). 상용차 부문과 더불어 트램과 같은 대중 교통에도 수소 연료를 적극 도입하고 있다. 

또한, 태양광·수력·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그린 수소 생산량도 2025년 연 20만 톤까지 끌어올릴 예정이다. 이를 위해 국영정유사인 시노팩과 태양광업체 롱기(LONGi) 등이 대규모 설비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정부 주도 아래 충전 인프라 구축도 적극 나서며, 2024년 기준 글로벌 수소차 충전소의 1/3이 중국이란 집계도 보도됐다. 오히려 현지에서는 중앙 정부의 계획을 넘어선 지방 정부의 과잉 투자를 우려할 정도다.

이와 관련해 지난달 부산모빌리티쇼에서 만난 현대차 글로벌수소비즈니스사업부 박철연 상무는 "우리도 HTWO광저우에서 수소연료전지를 만들고, 사천현대에서 생산한 수소상용차(엑시언트급 창호 및 마이티급 셩투)를 곧 판매한다"라며 중국 시장에 본격 대응할 것을 밝혔다.

#토요타의 추격

수소차 2위인 토요타도 현대차를 자극했다.

토요타는 글로벌 연 1100만대를 판매하는 세계 1위 업체지만, 수소차 시장에서는 현대차에 이은 2인자다. 다만, 현대차와 달리 토요타는 미국을 중심으로 수소차 수출 판매 비중을 크게 늘렸다. 그 결과, 수소차 시장에서 한때 3배 이상 벌어졌던 판매 격차도 지난해 1200대 수준까지 좁혀졌다. 글로벌 수소차 시장의 역성장에도 불구하고 중국 업체들과 더불어 토요타 역시 견고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와 별개로 미국과 중국 등에서 수소차 관련 특허도 토요타가 20% 이상 확보한 것으로 조사됐다. 현대차가 가진 특허가 수소연료전지에 집중됐다면, 토요타는 수소연료전지뿐 아니라 수소연소엔진부터 생산 및 저장 영역까지 보다 다양하다. 수소 생태계 조성을 위한 수소위원회(Hydrogen Council) 활동을 하며 많은 특허 라이센스를 풀었음에도 토요타가 현대차보다 두 배 이상 관련 특허를 보유했다는 평가다.

#뚝심이냐, 고집이냐?

이 같은 현대차의 행보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봐야 할까. 수소에 대한 현대차의 자부심과 의지는 정의선 회장에게서 비롯된다. 이는 한 해 목표와 생각이 담긴 신년사에서 잘 드러난다.

수석부회장으로 그룹 경영을 총괄하고 처음으로 주재한 2019년 그룹 시무식에서 그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 경쟁력을 갖춘 수소전기차를 2030년까지 8조원을 투자해 수소전기차의 대중화를 선도하고, 다양한 산업에 융합해 퍼스트 무버로서 수소 사회를 주도해 나갈 계획이다"고 밝힌다. 특히, 정 회장은 그해 수소위원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수소 사업에 대한 애정을 더욱 키운다.

2020년 신년사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보유한 수소전기차는 금년부터 차량뿐만 아니라, 연료전지시스템 판매를 본격화하고 관련 인프라 구축사업 협력을 통해 수소 산업 생태계 확장을 주도해 나갈 것"이라고 말한다. 2021년에도 "'인류를 위한 수소'라는 뜻을 담은 브랜드 'HTWO'를 바탕으로 다양한 모빌리티와 산업분야의 동력원으로 확대해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앞장서 나가겠다"며 변함없는 애정을 나타낸다. 이 같은 수소에 대한 정 회장의 행보는 "2040년 수소 에너지 대중화"를 선언했던 하이드로젠 웨이브(2021년)가 정점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좋지 않은 시장의 흐름을 반영하듯 2022년 신년사부터 수소에 대한 내용은 대폭 줄었고, 2023년에는 언급조차 없었다.

그리고 2024년 신년사에 수소가 다시 등장한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3가지 방향 중 첫 번째로 '환경을 위한 사회적 책임'을 언급하며, "수소 생태계를 신속히 조성하고, 소형 원자로와 클린 에너지를 통한 탄소중립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욱이 현대차 대표이사직을 맡고 있는 장재훈 사장이 올해 수소위원회 회장으로 선임되며, 회사 내 분위기는 한층 수소로 집중되는 모습이다. 

#수소의 모든 것

정몽구 명예회장이 '쇳물에서 자동차까지'를 모토로 현대차그룹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면, 정의선 회장은 자동차를 넘어 수소에 대한 모든 솔루션을 제공하려 한다.

대표적인 예로 수소 생산을 꼽을 수 있다. 탄소 배출이 없는 그린 수소는 수전해* 과정에서 필요한 전기를 태양광·수력·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충당한다. 현대차는 한 발 더 나아가 지역 및 환경에 따라 그린 수소 생산이 어려울 경우 쓰레기를 활용한 수소 생산 기술을 연구개발 중이다. 

실제로 음식물 쓰레기, 하수 슬러지, 가축 분뇨 등 유기성 폐기물에서 발생한 메탄을 정제해 바이오가스로 만든 후 다시 수소로 변환하는 W2H(Waste-to-Hydrogen) 기술을 인도네시아 자바에서 실증하고 있다. 또한, 재활용이 불가능한 폐플라스틱을 녹여 합성가스를 만든 뒤 이를 정제해 수소를 생산하는 P2H(Plastic-to-Hydrogen)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

이어 자동차 외에도 기차와 선박, 항공기, UAM, 방산, 기계 장비, 발전기 등에 수소 시스템을 도입하려 한다. 수소연료전지 시스템을 단순 공급하는 단계를 넘어 수소 모빌리티 솔루션을 직접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에 대해 글로벌수소비즈니스사업부 박철연 상무도 "당장 모든 솔루션을 직접 제공하는 것은 어렵지만,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우리가 점차 나아가야할 방향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편, 현대차 일부 임직원들은 수소 사업과 관련해 "회사 방향과 조직 구성이 너무 자주 왔다갔다 한다"라며 "언제는 전기차로 다 넘어갈 것처럼 하다가 다시 엔진(하이브리드 포함)을 챙기라 하고, 이번엔 또 수소다"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신승영 sy@autocast.kr
    안녕하세요. 신승영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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